2. 조선족 경제의 특성
가. 전통적 벼농사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족 농촌
100여 년 전 이주 초기시대부터 조선족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에 와서도 황무지를 개척하며 농업에 종사하였고 하천을 따라 벼농사를 지으며 정착하였다. 중국 북방에 벼농사를 보급한 원조가 조선족으로 알려지고 있다. 1930년대 초기, 전 동북지역에 인구의 3%밖에 되지 않는 조선족의 벼 생산량은 당시 동북지방 전체 벼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였다.39) 1995년 현재도 중국 조선족의 70%는 농촌에 집거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조선족들은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흑룡강성 조선족촌 491개의 총생산액의 변화를 보면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연평균 21.4%의 성장률을 보였고 1인당 소득의 증가는 연 15.8%의 고성장을 나타내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총생산액은 16.3%, 1인당 소득은 연평균 16% 증가하였다. 1995년 흑룡강성 491개 조선족촌의 수입구성 변화를 보면 <표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배농업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감소를 보여주고 있고 노무수입을 비롯한 서비스 부분 수입이 대폭적인 증가세를 나타내는 점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표 6> 조선족촌의 부문별 수입비중 변화
(단위; %)
연도\구분
재배업
향진기업
임업
목축업
어업
서비스업
비고
1990
66.8
17.3
0.1
4.1
0.8
10.9
1995
53.2
10.6
0.1
2.8
0.8
32.4
증감율
-13.6
-6.7
-1.3
21.5
자료 ; 김삼최, 21세기 전반기 흑룡강성 조선족경제 발전전망, 21세기 중국 조선족 발전과 전략(중), 백산자료원, 1999, p.546에서 인용 재구성.
개혁 개방이전에는 집거지 중심의 벼농사를 통해서 타민족보다 소득이 높은 생활을 영위하였으나 개방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그 사정은 달라지게 되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흑룡강성 국내 총생산액은 연평균 7.2% 증가할 것으로 계획하는 가운데 조선족촌은 8% 정도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40) 이러한 성장률은 지금까지 계획경제에서 오는 빈곤상태에서 시장경제 도입에 따르는 증산촉진, 노무수입의 유입에 기인하는 상대적인 증가일 뿐이다. 조선족의 소득증가는 오로지 노무수입의 증가에 매달려 있다.
흑룡강성의 경우 21개의 조선족향과 491개의 조선족촌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목축업 임업 기타 부업 등 업종다각화를 통한 소득증대사업으로 농촌 총생산액의 30%이상 소득을 올리는 조선족 촌은 겨우 5.3%인 27개 41) 흑룡강성 전체의 농가생산 중에서 임업 목축업 어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에는 35%에 달하고 1999년에는 37%로 증가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족 농가는 각각 8.2%, 6%로 그 비중도 적은 반면 오히려 감소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벼 생산량도 흑룡강성 전체의 증가율보다 절반밖에 안 되는 3.3%에 머무를 정도이다. 농촌소득구조를 보면 1990년과 1995년의 농산물 재배수입 비중은 13.6% 하락하였다. 대부분의 조선족 농민들은 한국 노무출국 기회를 노리면서 단순한 벼농사만 짓고 있고 축산이나 경제작물 재배는 생각도 않는다.
한국의 富, 한국 농촌의 발전이 근면과 뼈를 깎는 노고를 바탕으로 이룩한 것임을 알고 조선족들도 손발을 고달프게 놀려 스스로 시장경제의 생리에 적응하자는 신문칼럼42) 과 한국 돈벌이만 생각하고 터무니없는 몽상에 젖은 조선족들을 개탄하고 자랑스럽던 근면정신을 되찾자는 신문사설은 절규에 가깝다.43) 이와 같이 조선족촌의 대부분은 계획경제시대의 생산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낙후된 영농에 머물러 있다.
나. 鄕鎭企業의 부진
농촌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도입된 향진기업 정책이 조선족 촌에서는 정착이 잘 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대부분이 사회주의식 集體(鄕, 鎭 등 단위조직) 소유체제여서 효율적 경영이 안 되고 있다. 농촌 공업화의 상징인 향진기업의 성과는 흑룡강성 491개 조선족촌의 경우 1990년에서 1995년까지 5년간 연평균 6.2%의 성장률을 나타냈지만, 그 수입의 비중은 오히려 <표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6.7% 감소하였다. 흑룡강성 전체의 향진기업 연평균 성장률은 30%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조선족촌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김삼최가 그 이유를 집체식 경영에 따르는 효율성의 부진, 노무출국에 따르는 우수 인력의 부재 등으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노무출국확대에 따르는 조선족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44)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선족 지역의 114개 기업들의 집체자본이 70.3%를 차지함으로써 기업경영에 집체조직의 간섭이 많고 경영을 맡은 사람 역시 피고용인으로서 무사 안일한 자세로 임하는 형편이다. 그 중 60%가 겨우 수지균형을 맞추는 형편이고 나머지는 적자상태다. 그러나 316개의 개체사영기업들은 95%이상 혹자 경영을 유지하고있다.
다. 국외 노무진출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과 노무수입으로 인한 부의 축적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조선족 농민들의 대외진출은 주로 한국 일본 싱가폴 호주 미국 등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97년 1년간 흑룡강성 조선족 농민들의 노무수출에 따른 송금액은 4억元, 1998년 3.5억元 등으로 흑룡강성 조선족 농민 총생산액의 37.7%를 차지할 정도였다. 1인당 연간 송금액은 최저 5만元, 최고 10만 元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금액은 중국 농촌의 수입으로서는 10년 이상의 소득에 해당하는 고액이다. 1995년의 경우 흑룡강성 조선족 해외 노무진출인원은 16,000여명에 달할 정도였다. 1998년에는 노무진출 인력이 농촌 노동력의 20%, 1999년에는 23.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의 수입은 각 각 농가총수입의 48.8%, 62%를 차지할 정도였다.45) 해림시 해남조선족향 산하촌의 경우 조선족 농가 267호, 조선족 인구 970명인데 1999년 총수입 438만 元 중 노무진출 수입은 297만 元으로서 총수입의 67.8%에 이르고 있다.46) 1인당 순수입이 연간 4,238元인데 그 중 노무수입을 제외하면 1,112元에 불과하다. 이러한 노무진출은 전통적인 저소득 벼농사에 의존하던 농가의 수입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고 귀국 후에는 귀농하지 않고 도시로 이농하거나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유휴 인력으로 변모하였다. 따라서 농지는 한족들에게 양도하거나 일꾼을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조선족 농민들은 재출국의 기회를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신세가 되고 만다. 노무진출로 인한 수입자금을 영농기술 배양이나 농촌에 재투자하지 않는다.
또한 노무진출 가정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을 형성하고 노무진출을 하지 못한 가정은 여전히 낙후된 농업소득으로 여전히 저소득층으로 지내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근검 절약하는 조선족 농촌의 관습은 사라지고 유흥비 지출이 늘어나는 과소비 현상이 대두되었다. 노무수입은 생산자금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재출국의 기회까지 생활자금으로 소진되는 형편이다. 이와 같이 노무진출은 조선족 농민들에게 희망이자 새로운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라. 도시 조선족 기업들의 영세성
조선족들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도 개혁개방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게 되었다.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연변자치주의 GDP 구성에서 산업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1980년 1차산업 23.6%, 2차산업 51.2%, 3차산업 25.2%에서 1997년도에는 각각 16.8%, 41.6%, 41.6%로서 3차산업의 비중이 대폭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47)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오로지 조선족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연변지역 전체의 통계임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족인구의 비중으로 보아서 그 추세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목단강시 조선족향의 총수입을 보면 1991년 농림어업 수입이 89.1%이고 비농림업 수입이 10.9%였으나 1996년에는 농림어업수입이 46.2%로 대폭 하강한 것48)을 보아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 활동하는 조선족들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목욕탕 음식점 노래방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르러 젊은 청년사업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1995년 현재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사업을 보면 1,50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 기업형태의 사업이 450여 개이고 나머지 1,000여 개 업체는 유흥업 음식점 등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본 없이 농촌지역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기업활동을 할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따라서 경영형태도 지속적인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이익이 되는 분야에 수시로 전환하는 게릴라식 사업형태를 보여주고 있다.49) 흑룡강성 할빈의 경우 조선족 상공인회를 결성하고 50여명의 사업자 및 국유기업체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경영정보 교환, 친목도모 등을 통해서 민족경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회원들 중 자영업자 27명의 사업형태를 보면 제조판매업이 5명, 컴퓨터 소프터웨어 개발 2명, 유통 무역업 4명, 설비설치업 4명, 식당 목욕탕 등 서비스업 11명 등이고 대기업 규모는 치치할시의 대전집단(회장 오성학), 할빈의 국제공사(사장 김명술) 등 4~5명에 불과하다. 대전집단의 오회장은 1994년 적자로 허덕이던 국영기업을 4천9백만元에 인수하고 지금은 종업원 3천명에 연간 매출액 4억7천만元의 흑자기업으로 전환되었다. 직원들은 중간관리자 30여명만 조선족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족들이다. 농산물 가공업과 농기계제작업이 주업종이다. 이와 같이 성공한 대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 조선족 경제활동은 대부분 영세성을 못면하는 상황이고 독자적인 통계도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3. 조선족 경제의 발전 방향
위에서 살펴본 조선족의 경제현상을 토대로 향후 조선족 경제의 발전 방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농촌 산업화, 농촌 도시화, 규모경영, 영농다각화(경제작물 재배, 목축업 전환등) 및 전문화, 기계화 영농 등을 도모하여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농촌경제로 전환하여야 한다. 전통적인 벼농사 중심에서 벗어나 양돈, 육우, 특용작물 재배 등 경제농업으로 전환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등 외국자본을 유치하여 향진기업을 일으키고 민족자원을 이용한 거래망을 확보하여 생산과 무역을 연결하는 대외지향형 경제를 전개하여야 한다.
② 농촌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농촌공업화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시장경제에 맞추어 개체사유기업형으로 이윤동기를 부여하고 효율적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이것은 중국경제가 국영기업의 부실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한 점과 상통하는 문제이다.
③ 조선족들의 고국방문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조선족 공동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돈을 번다는 단기적인 효과만이 아니라 한국경험을 통해 시장경제의 본질을 체득하고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배우는 계기가 됨으로써 조선족들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족 사회를 건설하는 기회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노무수입자금을 생산자금으로 활용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족 지식인들을 통한 의식개혁 교육, 농업 신기술 보급, 영농 다각화 등을 통한 소득 증대 사업의 창출 등이 필요하다.
④ 중국사회의 산업화 추세에 맞추어 조선족촌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인근 조선족촌들을 합병하거나 향단위로 재구성하여 도시화 농촌을 건설하고 새로운 조선족 집거마을을 건설하여야 한다. 이농현상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영농의 규모화를 도모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하여 수익성 있는 향진기업을 운영하여 소득중대 사업을 펼치도록 하여야 한다. 향진기업을 협동형 농촌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한국의 자본과 연계하여 투자를 유치하고 생산제품은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50) 이러한 모형은 흑룡강성 상지시에 자연스럽게 건설된 고려촌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현지 김책중학교에서 집을 지어 팔기 시작하면서 조선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1995년 현재 330세대 인구가 1,400여명에 달하게 되었으며 주민들은 주로 음식점, 상점, 미용실, 의원 등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51) 할빈시에 진출한 한국투자기업 380개 업체 중 50여 개 업체가 조선족 향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⑤ 새로운 조선족 집거화는 기업집단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조선족기업집단이나 한국의 투자기업을 중심으로 하여 취업중인 조선족들의 집단거주를 통해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의 자본과 市場力 및 중국 조선족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한 민족기업 건설을 통해 한민족경제 공동체의 건설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기업단위의 주택건설을 통한 기업촌 형성을 통하여 자연스러운 조선족마을을 건설할 수 있고 이를 통한 교육과 문화의 유지 보존도 가능할 것이다. 할빈시의 대규모 한국투자기업인 쌍태전자그룹은 할빈시 경제발전의 중심을 이를 정도로 그 역할이 큰데 한 때 종업원 4천여명 중 50%를 조선족이 차지할 정도로 조선족 집거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1800여개 한국기업들이 진출하여 정착하고 있는 청도시는 중국에서 동북3성 이외 우리 민족 최대집거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따라 부근 여러 소속 현 · 시를 포함, 조선족 인구는 6만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연변대학 출신으로 흑룡강성 오상조선족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91년 청도에 진출한 계동현 출신의 황민국은 5년간 한국완구회사에서 생산관리를 몸에 익힌후 독립하여 회사를 설립하여 현재는 여섯개 공장을 두고 년간 1000여만 딸라 수출액을 기록하는 청도지역《완구왕》이 되였다.
아혁대신방화판의 주인인 연길태생 김 혁씨는 다년간 한국방화판을 수입하는 한편 자체공장을 세우고 중국내에 20여개 사무소를 세워 이미 수천만원 판매액을 올리고 있다.
한국식당《선미미》의 주인 김봉덕, 첨단기술제품인 다기능 용접기를 개발하여 안산강철공사, 장춘제1자동차공장, 대련조선소에까지 납품하는 가목사 출신의 김용진 등 제조업, 음식오락업, 인테리어, 대외무역 등 수많은 분야에 크고 작은 조선족업체가 400여개나 된다.
이와 같이 청도시에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코리아타운 리창구의 리촌지역은 지리적으로 청도시에서 연대, 위해, 제남 등지로 가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래 40여개 한국업체가 리촌을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한 주변지대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도처에 공장건물, 아파트, 음식점, 상가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지금은 부근의 많은 향진까지 확산,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 조선족만 해도 2만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리촌지하농산물시장은 지하시장에 조선족들이 차린 한국식품 재료 판매대가 60여개나 되며 설명절이면 시내음식점이나 아파트단지로 순대며 여러 가지 란지, 떡을 송달하느라 바쁘다. 길림성 영길현 태생의 박경찬(35세), 최은화(30세)부부는 1995년 청도에 와서 한국인으로부터 다시다, 양념 등을 받아넘겨 팔다가 밑천이 얼마간 생기자 매대를 차리고 짠지장사를 본격 시작, 아파트를 사들여 청도사람이 되였다고 자랑한다(흑룡강신문 www.hljxinwen.com 2001.11.21).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기업 진출과 조선족의 상호의존성이 얼마나 큰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⑥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을 통한 소득 증대를 도모해야 한다. 흑룡강성 영란향에서는 근래 2년간 300만 元을 투자하여 지역의 특성을 살린 북방의 제1漂流地 개발 및 민족풍정유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2000년 6월 전후 5개월 동안 연인원 8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45만 元의 재정수입증대 효과를 거두었고, 파언현 와흥진 조선족촌에서는 풍부한 삼림지역을 이용하여 삼림열차를 설치하여 삼림관광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고려채>를 조성하여 민속촌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목단강시 발해진의 발해유적지와 연계한 조선족민속풍광 개발도 좋은 사례이다.
⑦ 한국식 새마을 운동을 도입하여 조선족촌 단위로 근면 성실 자조 협동하는 정신을 개발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개체의 이익도 확대하는 시장경제형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도록 한다. 의식 있는 지도자들의 솔선수범하는 봉사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아성시 지전향 흥신촌이나 파언현 와흥진 조선족촌의 모범촌 건설의 예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와흥진의 경우 김 모 여성지도자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마을길을 보수하고 수질개선을 통해 식수난을 해결하였으며 인근 삼림열차의 철로를 이 마을까지 지나가도록 간이역을 유치하여 민속관광촌을 개발하여 소득증대사업을 도모하였다.
⑧ 도시 조선족 기업들의 경영능력 개선을 위해 한국경제단체가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이들의 경영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한 중 경제교류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